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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갉아먹는다'…한국 초고속 새벽배송의 그늘
- 기자, 제이크 권, 최리현, 이호수
- 기자, BBC 뉴스
- Reporting from, 서울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5 분
박미숙 씨는 아들이 숨지기 일주일 전, 그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당시 27세였던 장덕준 씨는 1년 넘게 한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넓은 물류센터 안에서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 상자가 쌓인 운반 장비를 몰았다.
박 씨는 그 기간 아들의 체중이 15kg 줄었고, 아들이 자주 피곤하다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 씨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을 시소에 비유했다. 자신이 내려오면 동료들이 계속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박 씨는 욕조에 몸을 웅크린 채 의식을 잃은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이) 보통 새벽 4시에 퇴근해 집에 오면 6시쯤 됐어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날은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어요. 저희가 아들을 꺼내 응급조치를 한 뒤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장 씨는 심장마비로 숨졌다. 노동자들의 산재보험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조사 결과, 그의 사망 원인이 과로에 있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아들의 지친 모습을 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때 제가 덕준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고, 옆에서 더 힘이 돼주지 못해 아들을 잃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제발 이런 일로 저희와 같은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해요."
장 씨는 2020년 숨졌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박 씨는 아들을 죽게 한 원인이라고 믿는 '야간배송'을 중단시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장 씨가 숨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배송 물량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당시 그의 과중한 업무 역시 팬데믹의 영향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둘러싼 논쟁은 전국적으로 더욱 커져왔고, 노조는 과로사로 의심되는 죽음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초연결사회인 한국에서 야간배송은 일상이 됐다. 자정 전에 주문하면 오전 7시까지 배송받을 수 있다. 이런 편리함은 장 씨와 같은 물류센터 노동자부터 배송기사까지, 밤새 일하는 대규모 노동력 덕분에 가능하다.
여러 기업이 빠르고 저렴한 배송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업체는 쿠팡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창업한 쿠팡은 2015년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한 뒤 한국 온라인 쇼핑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경쟁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물류센터와 배송 트럭망을 구축했고, 사업 전반에 걸쳐 약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장 씨를 포함해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 46명이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으로 업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다만 이들 가운데 장 씨를 제외한 몇 명이 야간 근무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들 가운데 과로가 사망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사례가 몇 건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과로 여부에 대한 조사는 유가족이 산재 신청 과정에서 요청한 경우에만 이뤄진다. 또한 모든 사망 사례가 애초에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되는 것은 아니어서, 관련 통계는 불완전할 수 있다.
과거 근로복지공단 자료에서는 주간 배송 노동자가 야간 배송 노동자보다 과로와 사고로 숨지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야간배송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데다 그 영향을 충분히 보여줄 자료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 같은 분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노조는 장기적으로는 야간배송이 건강에 더 해롭다고 주장한다.
유엔 산하 암 연구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야간 노동이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요인이라고 본다. 강모열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그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정신질환의 위험도 높인다는 근거가 계속 축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야간 배송기사가 24시간 중 1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야간 노동시간에도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 택배노조는 지난해 새벽배송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친구,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 등 쿠팡의 배송기사 노조는 조합원 대부분이 야간 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낮 동안 자녀나 고령 또는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 임금이 더 높기 때문이다.
실명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한 쿠팡 하청 배송기사 김 씨는 "사실 이 일이 몸과 체력을 너무 갉아먹는 느낌이라 평생 하기에는 많이 애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급이 약 700만원으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가까워, 감수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BBC가 밤 10시에 김 씨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첫 번째 배송을 위해 트럭에 물건을 실어둔 상태였다.
그는 인천의 좁은 골목길을 운전하며, 일주일에 5~6일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근무 일정에는 쉴 틈이 없다. 트럭이 멈출 때마다 그는 택배 상자를 들고 뛰어간다. 김 씨는 거의 모든 배송기사가 배송 건수에 따라 임금을 받으며, 오전 7시까지 배송을 모두 마치지 못하면 자신의 '구역'을 경쟁 기사에게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임신 중인 아내는 그가 운전 중 졸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제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밤에는 도로가 비어 있어 운전하기도 더 수월하다고 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야간 배송을 선택합니다."
김 씨는 자신의 건강을 이유로 야간 배송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내린 선택은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의 어머니 박 씨는 빠른 배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이 같은 노동 형태가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김 씨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쿠팡 본사 앞에서 박 씨를 만났다. 출입문 앞에 홀로 선 그는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오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아들과 그와 같은 노동자들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 씨는 이런 사건에서 고용주에게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아들이 과로로 숨졌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지만, 쿠팡은 CCTV 영상 등 관련 자료를 박 씨가 아닌 근로복지공단에만 제출할 의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수개월 동안 국회의원과 정부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끝에 장 씨의 근무 기록과 관련 CCTV 영상을 확보했다.
장 씨가 숨지기 전 몇 달간의 노동시간은 한국에서 과로 관련 사망을 인정하는 기준에 해당했다. 한국 기준에 따르면, 사망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 이상이거나, 사망 전 4주 동안 주당 평균 64시간 이상 일한 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숨지면 과로와의 관련성을 판단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기준에 따라 장 씨의 야간 노동시간에는 30%의 가중치가 적용됐다.
박 씨가 싸움을 이어가던 중, 국내 언론은 쿠팡의 전 개인정보보호책임자가 쿠팡의 김범석 의장과 나눈 대화라고 주장한 내용을 보도했다. 공개된 대화에서 김 의장은 장 씨의 마지막 근무를 설명하며 여러 직원이 사용한 '열심히 일했다'는 표현을 내부 보고서에서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은 불만을 품은 전직 임원이 제기한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노조는 쿠팡이 증거를 은폐했다며 형사 고발했다. 경찰은 2025년 12월 쿠팡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쿠팡은 요청받은 자료를 모두 제출했고 근로복지공단 조사에도 전적으로 협조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 무렵 또 다른 사건도 큰 주목을 받았다. 34세 오승용 씨는 배송 중 몰던 트럭이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가 사망에 영향을 미친 '업무상 사망'으로 판단했다.
오 씨의 누나는 국회에서 오 씨의 근무 기록을 보면 일주일에 6일, 하루 11시간 넘게 일했고 대부분 야간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며칠 전 숨졌을 때도 오 씨가 주문 물품을 네 시간 더 배송한 뒤 병원에 왔다고 했다. 오 씨는 쿠팡과 계약한 물류업체 소속이었다.
쿠팡은 직고용 직원의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고, 하청 배송기사에게는 2주마다 주말 이틀을 모두 쉬게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는 오 씨의 고용업체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쿠팡은 직고용 직원과 하청 배송기사의 건강검진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으며, "산업재해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 전 세계 물류업계에서 가장 우수한 안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럴드 로저스 쿠팡 최고경영자(CEO)는 장 씨와 오 씨의 죽음, 그리고 최근 발생한 3750만 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회에 출석을 요구받았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로, 쿠팡에는 사상 최대인 약 6246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박 씨는 김범석 의장이 아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오 씨의 누나는 로저스 대표에게 사과를 요청했다. 로저스 대표는 "죄송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오 씨의 누나가 거듭 답변을 요구하자 그는 침묵했다.
쿠팡을 둘러싼 수사는 공장에서 일하다 입은 오래된 부상으로 왼팔이 변형된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산업재해와 업무상 사망을 줄이는 일을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장 씨와 오 씨의 이야기는 고된 장시간 노동이 결코 드문 일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깊은 공감을 받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업무상 사망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수십 년 동안 이 암울한 통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정부는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경영진의 과실로 업무상 사망이 발생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도 도입했다. 여당은 쿠팡의 독주를 견제한다며 더 많은 유통업체가 야간배송에 나설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 활동가, 박 씨는 문제가 쿠팡 한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저는 아들이 5년 전 일을 당한 이후로 길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
보상과 진상 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을 쏟으면서 박 씨는 가구 제작 사업을 접어야 했다. 살던 집의 비용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대구의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다.
박 씨는 아들이 모았던 피규어를 비롯한 그의 물건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물건들은 새 아파트의 상자 안에 담겨 있다. 박 씨는 아직 아들에게 작별을 고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싸움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장 씨가 자신의 일을 시소에 비유하며 한쪽을 자신이 버티고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박 씨는 이제 그 시소를 다르게 바라본다고 했다. 한쪽에는 장 씨와 그와 같은 수만 명의 노동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소비자의 편리함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작은 편리함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에 눈감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